플라톤은 호메로스를 불같이 질투했습니다. 정작 자신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며 자랐는데도 말이죠. 대체 왜 그랬을까요?
<철학 콘서트 2> (황광우_21세기 북스)
호메로스를 질투한 플라톤의 속내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직접적으로 질투합니다.
플라톤의 마음을 <국가>에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국가>에는 시인의 저서를 정말 많이 인용하고, 좋은 이유를 서술하면서도 '문학 검열제(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시, 소설 같은 종류의 문학은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를 주장합니다. '시인들은 믿을 게 못 되고, 언제 사고 칠지 모르니 감시가 필요하다'면서 말이죠.
호메로스는 플라톤이 어렸을 적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흥미진진한 시를 재밌게 엮어서 들려주니까요.
오늘날로 따지면 'SKY 캐슬' 시나리오 작가 격이에요.
게다가 고대인들과 그 이후 전 유럽인의 인생 교과서로 쓰였으니까요.
황광우 님은 아마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질투한 이유는 호메로스의 꺼지지 않는 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일리아스>는 어떤 내용일까?
<일리아스>는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플라톤까지도 질투하게 만들었을까요?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입니다. 트로이 전쟁 속 일어난 영웅들의 싸움을 그립니다.
황광우 님은 트로이 전쟁을 이렇게 풀어내십니다.
트로이 전쟁은 약탈 전쟁이었다. 빛나는 문명의 도시, 트로이의 보물을 강탈하려는 그리스인들의 강도짓에 다름 아닌 것. 우리로 치면 왜구의 노략질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미화하기 위해 신화를 빌렸다.
전쟁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 자체였다. 아가멤논이나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나, 아무리 호메로스에 의해 그 용맹과 지모가 칭송된다 한들 그들의 전쟁은 약탈이었다. (39쪽)
그러니까 <일리아스>는 그냥 전쟁 드라마 같은 것입니다. 평범하다 못해 발에 치이는 게 전쟁 이야기 었던 시대에도 <일리아스>가 잊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의 미묘한 마음을 다뤘기 때문입니다.
<일리아스>는 사실 전쟁 이야기를 가장한 인문학 이야기
인간의 미묘한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일리아스>에는 다른 전쟁 서사시에는 없는 2가지가 있습니다. 이 2가지 때문에 세상 널리 알려진 것이지요.
<일리아스>에는 당시 왕과 장군, 귀족들의 생생한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일리아스>에는 당시 인생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책 중간쯤 이런 말을 합니다.
보물들, 구역질 난다.
그가 나에게 열 배, 스무 배를 더 줄지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줄지라도
세상 끝까지 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줄지라도
가장 위대한 보물더미로 넘쳐나는
이집트인의 테베로 실리는 모든 부를 줄지라도
아니, 땅 위의 모든 모래알과 먼지보다 많은 보물을 줄지라도
아가멤논은 나의 투지를 되돌릴 수 없다. (41쪽)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의 호의의 뜻을 간파합니다.
'이 보물과 성들, 내 딸까지 줄 테니 화 풀고 내 팀이 되어라'
사실상 복종하라는 통고였던 거예요.
하지만 아가멤논은 하나를 놓쳤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는 정정당당하게 얻어진 명예를 위해 사는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호메로스는 참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의견 1%도 없이 객관적으로 <일리아스>를 썼습니다.
하지만 <일리아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호메로스의 생각이 뭔지 알아채게 됩니다.
'전쟁이 뭐길래 이렇게 싸우는가? 어차피 땅과 돈을 얻기 위함 아닌가? 그러지 말고 너만의 인생의 가치를 찾아라'
철학이라는 게 뭔가요?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길 아닐까요?
남이 강요한대로 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바로 철학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전쟁 중'인지도 모릅니다.
멀리서 보면 쓸데없는 것을 위해 싸우고, 다 싸우고 나서야 그게 쓸데없는 줄 알게 되니까요.
한 번뿐인 인생, 자신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철학콘서트 1
철학한다는 건, 인간을 알아가는 것이고,
인간을 알아간다는 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을 배우면 대체 뭐가 좋을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