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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책 중독자가 말하는 도서관다움

by 로운 이 202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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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둘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도서관을 참 좋아합니다. 책과 사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서점도 있지 않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점은 새 책으로 둘러 쌓여 있다는 매력이 있지만 그만큼 눈치가 보입니다. 결정적으로 도서관에는 서점이 절대 가질 수 없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제가 오늘 발굴해낸 생각은 '도서관다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입니다. 다음 글이 올라올 때까지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주세요.

 


 

책과 사람의 교집합, 도서관

제가 최고로 치는 도서관은 열 자리 중 세 자리가 채워져 있는 곳입니다.  그때라야 비로소 도서관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도서관다운 분위기는 눈과 코와 귀로 하여금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눈으로 보는 도서관다움

도서관다운 분위기란 먼저 눈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눈을 통해 도서관에서 행복과 희열을 느낍니다. 책꽂이 사이사이를 거닐다 제목에 꽂혀 펼친 책이 정말 마음에 들 때 저는 희열을 느낍니다.

 

너무 좋아 환호성을 지르며 비보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도서관에선 그럴 수 없으니 큰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내적 환호성을 지르며 내적 비보잉을 합니다. 

 

우연히 좋은 책을 발견하면 먼저 재빨리 훑어봅니다. 한시라도 빨리 내용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재빨리’에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좋은 책을 발견하자마자 자세히 읽지 않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한 쪽, 한 문장, 한 글자에 담겨 있는 행복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책꽂이에 새 책이 들어와 있음을 봤을 때도 눈을 통해 도서관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역시 큰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습니다. 그때 마음속의 저는 앞으로 덤블링을 세 바퀴 합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 책을 보고 살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책이라면 더 행복합니다. 그때의 제 행복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신다면 사서님과 관장님을 꽉 안고 싶을 정도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도서관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도서관에 가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햇살과 햇살에 비친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도서관 창문엔 약간의 거미줄과 먼지가 있어,  풍경을 또렷하게 볼 순 없지만 그런대로 만족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과 사람은 물론 찬란한 자연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코로 느끼는 도서관다움

도서관은 코에게 행복을 줍니다. 도서관은 각각의 향이 있습니다. 편백 나무 냄새가 나는 도서관도 있고, 새 책 특유의 접착제 냄새가 나는 도서관도 있고, 은은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도서관도 있습니다.

 

제가 자주 다니는 도서관에서는 오래된 책 냄새가 납니다. 바닐라와 아몬드가 생각나는 냄새가 납니다. 저는 어쩌면 도서관의 향에 사람을 중독시키는 물질이 있진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만큼 도서관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코를 행복하게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못 헤어나게 만들 것 같습니다. 

 


 

귀로 듣는 도서관다움

마지막으로 도서관은 귀에 행복을 줍니다. 도서관에 잘 가지 않는 사람은 도서관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도서관은 생각보다 복작복작한 소리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먼저 도서관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소리, 그러니까 넓은 대리석 바닥을 걸으며 나는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이 소리를 들으며 내가 진짜 도서관에 왔음을 느낍니다. 왠지 모르게 중요한 일을 하러 서류가방을 들고 가는 월스트리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도서관 안에 들어가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주 들리진 않지만 오랜 시간 도서관에 있다 보면 책장 넘기는 소리가 각각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들린다는 재밌는 사실을 깨달으실 겁니다. 

 

또 간혹 전화벨 소리도 들립니다. 단조롭던 책장 넘기는 소리를 깨는 전화벨 소리는 심지어 경쾌하고 발랄하게도 들립니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후다닥 뛰어나가는 사람을 보며 웃음을 지으며 목 스트레칭을 합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보다 가끔, 전화벨 소리보다 자주 들리는 소리는 책을 떨어뜨리는 소리입니다. 운이 좋다면 책을 떨어뜨리는 소리에 잠이 깨, 고개를 번쩍 드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다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서님이 책을 책꽂이에 꽂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 외에도 사서님들이 여러 권의 책을 옮기기 위해 사용하는 북트럭 굴러가는 소리, 책을 바르게 꽂기 위해 굽힌 무릎 위에 세네 권의 책을 올려놓는 소리, 책을 꽂기 위해 책 사이를 벌리는 소리, 책꽂이에 책을 꽂는 소리, 그리고 책이 넘어지며 옆 책과 부딪히며 나는 둔탁하고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립니다.

 

 

 

 


 

가장 큰 행복이 숨겨져 있는 곳

이렇게 저는 눈과 코와 귀로 도서관다움을 느낍니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도서관 안에 행복이 어찌나 많은지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도서관에는 보이는 모든 것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행복이 숨어 있으니까요.

 

만약 제게 ‘네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주저 없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곳이야말로 제 눈과 코와 귀를 영원에 가깝도록 행복하게 만들어줄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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